꿈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서 급히 집을 나섰다. 골목길을 걷다가 함께 점심을 하기로 한,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전봇대와 만났다. 전봇대와 어깨동무를 하고(사실 어깨동무라기보다는 내가 전봇대를 한 팔로 감싸 안은 것에 더 가깝다.) 동네를 걸었다. 가장 오래된 전봇대는 동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어떤 식당이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서 말이다. 어떤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그 식당은 입구가 작아서 전봇대가 들어올 수가 없었다. 전봇대는 어차피 음식을 먹 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홀로 남겨두고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힘 있는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나도 맥주를 한 잔 받아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축하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식당 안에는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여기저기 맥주를 따르던 백발의 힘 있는 사람이 나에게도 맥주를 따 라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대관절 무엇을 축하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그 식당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축하 한다는 말을 해야 했다.

전봇대가 여기 들어오지 못 해서 불쌍하다고 잠깐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나에게 금방 잊히는 일이다. 전봇대는 전 봇대이고 절대 전봇대가 아니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쭐해졌다. 나는 전봇대가 아니고 절대 전봇대가 될 일 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