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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가능한 것은 존재 가능하다.” 이 명제는 양상실재론을 대표한다. 이 ‘상상 가능한 것’은 명확하게 형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예컨대, 우리는 동그라미를 상상할 수 있다. 고로 그 동그라미는 존재 가능하다. 그러나 네모난 동그라미는 상상할 수 없다. 이것은 언어적 표현일 뿐 우리의 물리세계에서는 절대 형상을 지닐 수 없다. 우리는 서울의 도심에 커다란 에펠탑이 서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은 존재 가능하다. 지금 글을 쓰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서울의 도심에 커다란 에펠탑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이 상상은 우리의 세계에 국한하면 거짓 명제가 된다. 그러나 다른 가능세계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서울의 도심에 커다란 에펠탑이 서있다.”라는 명제는 성립이 가능해진다.
나는 오래 전부터 위와 같은 이야기에 깊은 흥미를 지녀왔다. 이 흥미의 시작점은 나의 꿈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였다. 꿈에서는 도저히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는 한다. 특히 어느 날의 꿈에서 3층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갔던 때에 그 명확한 이미지를 구현해낼 수 없었다. 그저 느낌으로만 그 일을 경험했을 뿐이다. 잠에서 깨어나 꿈을 기록할 때 당연히 나는 그것에 대해 문자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3층 건물의 4층이라는 명제는 물리세계에서 거짓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미지로도 전혀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존재가능한 상태와 존재불가능한 상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화면을 구성해왔고, 더 나아가 우리가 명확하게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가능세계, 또는 우리 세계 시간선의 어느 지점에서는 존재 가능하다고 상정하게 되었다. 이 생각에 이르게 된 이유는 근대인들이 표현한 20세기의 상상도와 과거 어린이들의 과학상상화 속 내용들이 많은 부분에서 실현되었던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물리세계에 표출된 상상 이미지는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모든 아이디어는 두뇌 속에서는 언젠가 희석되고 증발되지만, 그것이 물리적 기록으로 남는 순간 타인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증가하며 그로 말미암아 집단적 지성과 기술을 통하여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명확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것을 물리적 화면에 노출시키는 일을 한다면 동일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을 가지며 나는 우리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았다. 인류의 역사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폭력과 차별이 난무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인류사의 모든 중요한 순간은 그저 권력을 지닌 이들의 선택에 따라 흘러온 것만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권력을 지니지 못 한 대다수의 인간은 그 거대한 역사의 파도에 순응하여 살아간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지탱하고 움직이는 힘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다정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협력과 혁신, 더 나아가 인간 종 전체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다정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혼돈의 시기에 들어섰다. 인류 역사상 비교적 평화로웠던 기간은 저무는 듯 보인다. 이 거대한 갈등의 틈바구니 안에서 나는 다정한 세계를 꿈 꾼다. 앞서 이야기한 믿음을 갖고 나는 다정함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을 그려낸다. 어떠한 장면에서는 이미 다정한 세계가 도래하기도 했다. 나는 이 구체적 상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표현하며 정말로 그 일이 벌어지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믿는다.
축약되고 보편적인 작가노트
나는 희망과 염원을 그린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릴 뿐이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개개인의 작은 이야기와 의지가 모여 거대한 파도를 만든다고 여긴다. 작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동물, 식물들은 서로를 위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행동한다. 그들은 때때로 마술적인 행위를 하는데, 현실에서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변화하는 것 또한 마법과도 같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마법과 같은 일의 원동력은 염원,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것이 바로 다정함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작품에는 ‘온기’라고 이름 붙인 다정함을 상징하는 불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렇게 나는 온기가 퍼져 나가는 세상을 그려 나간다.
‘현재의 작업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글
나는 10대 시절에 만화, 애니메이션의 길을 걸으려 했었고 그 꿈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다. 회화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은 16세 때의 일이었다. 나는 창작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했는데, 만화와 같은 긴 호흡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 일보다는 회화와 같이 각각의 작품을 통해 세계관을 축적하는 쪽이 더욱 알맞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주 관심사는 여러 종류의 ‘폭력’이었고 공식적인 미술가가 되기 이전부터 그러한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미술가로서 데뷔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작업을 했으나,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이미 부조리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며,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것’과 ‘직시하고 비판적 생각을 갖는 것’은 다른 일이나, 어쨌든 거의 모두가 부조리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그것을 단지 보여주거나 폭로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을 갖게 되었다. 이 물음이 작업의 전화점이 되었다.
그러한 물음 속에서 나는 나의 삶 전반, 그러니까 나의 개인사, 그리고 내가 살아온 시대, 더 나아가 인류사 전반을 살펴보게 되었다. 우리는 비록 폭력과 동떨어진 날들을 살아오지는 않았으나 거시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모든 해결책은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작업 역시 ‘다정함’이라는 키워드를 지니게 된 것이다. 나의 관점이 변화함에 따라 표현 방법 역시 달라지게 되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사용하는 색이다. 과거의 작업이 채도와 명도가 낮고 사용하는 색의 수가 극히 적었다면 현재의 작업은 더욱 다채로운 색면을 조합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는 별개로 색 표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화면의 구성에 있어서도 많은 연구가 따랐다. 이 연구는 콜라주를 이용한 드로잉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나의 본래 기반이었던 만화, 애니메이션적 방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과거에는 매우 평면적이었다면 최근의 작업에서 빛에 대한 표현 연구가 뒷받침되어 변화를 갖게 되었다.
"The proposition 'What is conceivable is possible' represents modal realism. This concept of 'conceivable' refers to what can be clearly imagined in form. For instance, we can imagine a circle, therefore it's possible for a circle to exist. However, a square circle can't be imagined; it's merely a linguistic expression and cannot take form in our physical world. We can imagine a large Eiffel Tower in the center of Seoul, which makes it possible in some realm of existence. Although the large Eiffel Tower does not exist in my current reality in Seoul, this imagination would be considered false in our world. But if we extend this to other possible worlds, the proposition 'There is a large Eiffel Tower in the center of Seoul' could be true."
I’ve long been fascinated by the narratives like the one mentioned earlier. This interest began with documenting my dreams. In dreams, impossible events occur. For example, I once dreamt of ascending to the fourth floor of a three-story building—a clear image that couldn’t be realized. Upon waking, I could only describe it in words. This impossibility in the physical world led me to ponder deeply on what states are possible or impossible to exist.
Based on these reflections, I’ve composed my canvases, further hypothesizing that images we can vividly imagine might exist in a possible world or at some point along our world’s timeline. This theory evolved from observing that futuristic visions and children’s scientific imaginations from the 20th century have often materialized. I believe that once imagined entities manifest in the physical world, their chances of becoming reality increase. Ideas may fade or evaporate in the mind, but once recorded physically, they are more likely to be communicated to others, becoming tangible through collective intellect and technology.
If we actively imagine a clear image and display it on a physical canvas, could it not lead to a similar realization? Reflecting on human history, it appears fraught with violence and discrimination, seemingly shaped by the choices of the powerful. Yet, I believe the world is sustained by the multitude of ordinary people and their kindness towards each other. Ultimately, cooperation, innovation, and the survival of humanity hinge upon our inherent capacity for kindness.
We have entered an era of turmoil once again. The relatively peaceful times in human history seem to be fading. Amidst this vast conflict, I dream of a world filled with kindness. Holding onto the beliefs I’ve mentioned, I depict those who act with kindness. In some scenes, a kind world has already arrived. I earnestly hope and believe that by repeatedly portraying these specific images of imagination, they might indeed come to fruition.